아이는 보여도 어른은 보이지 않는

2015년부터 나는 어떤 계기로 인해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았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수행 커뮤니티 중 한 곳에서
이런저런 글을 읽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사람이 워낙 많은 곳이다 보니
수행법도 제각각이었고,
아무리 수행자라지만
희한한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도를 팔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수행단체의 수장들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다양한 결들을 다 받아들이는 그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곳 수행자들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운경’이라는 수행인이었다.


그는 내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괴상한 궤변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다.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수행인의 자세만큼은 좋게 보았다.


호텔 요리사라는 직업까지 내려놓고,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경비원으로 직업을 바꾼 사람이었다.


그저 힐링이나 말하는
대부분의 수행자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런데 어느 날,
운영진들이 회의 결과라며 공지를 올렸고
그를 커뮤니티에서 내쫓아버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행자들의 머리를 어지럽힌다는 것이었다.
강퇴 이후에는
이제서야 평화가 왔다며
그를 조롱하는 글과 댓글들이 오갔다.


이미 떠난 사람을 향해
비웃음까지 보태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마음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의 수준이
고작 이것뿐인가 싶었다.


선불교에는 화두라는 수행이 있다.
무문관,
문이 없는 관문.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깨뜨려 가는 수행법이다.


나는 내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화두라면
답해보라며 게시글을 올렸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행자 운경을 위해
나는 진심으로 싸웠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내가 올린 글은 화두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분노를 담아
대충 싸질러 놓은 글에 가까웠다.


댓글은 끝도 없이 달렸다.
누군가는 나를
제2의 운경이라 불렀고,
끝까지 그를 조롱하는 댓글도 있었다.


지식이라는 구름만 잔뜩 낀 사람들.
심지어 그 지식을
서로 뽐내기까지 하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돈을 쫓는 마음이나
도를 쫓는 마음이나
결국은 똑같은 탐욕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내 답은 단지 하나였다.


“아이는 보여도 어른은 보이지 않는.”